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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봄의 한계

최근 이별을 경험하며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돌아봄의 시간은 대학생때부터 줄곧 해왔던 것인데, 이미 여러번 해왔던터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런 한계 속에 있을 때, 아는 언니가 최근에 수도원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며 은성수도원을 추천해줬다. 혼자서 돌아보는 것에 한계를 느낄 찰나였기에 바로 신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수 인원으로만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라 인원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화했는데, 다행히 바로 신청이 됐다. 
마침 알바가 끝나는 시점과 딱 맞아 떨어지는 덕에 더욱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허락하시는 바라고 생각하며 기대하는 마음 반, 조금 귀찮은 마음 반을 가지고 갈 준비를 했다. 안락하고 편한 집을 떠난다는 게, 특히 내향형인 나에겐 달가운 일은 아니다만 필요하고 내 마음이 갈급하니 가야지.
 
 
 
 

챙길 것(준비물)

신청하고 나면 목사님께서 파일을 하나 보내주신다. 가는 방법, 챙겨올 것, 나의 인생여정에 대해 적어올 것 등. 내가 가서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가면 됐었고 그 외 필기도구, 공책, (찬송가가 있는) 성경책, 간식 등이 있었다. 간식이란 별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간식을 좋아하거나 당이 떨어졌을 때 간간히 먹을 만큼 가져오라는 의미다. 나는 내 또래가 많을 줄 알고 한박스 사갔는데, 대부분 권사님들이셔서 간식이 줄지 않았다. 소량만 챙겨가도 될 듯.
가기 전, 나의 인생여정을 적어서 목사님께 전달드려야하는데 삶이 바쁘다보니 기한일 밤이 되어서야 전달드릴 수 있었다. 이렇게 내 인생여정을 적어서 누군가에게 공유한다는 게 참 오랜만인지라 새로웠다. 인생여정은 구구절절 쓰기보다 내 삶에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해서, 요약본처럼 적었다. 아마 A4 한장 정도이거나 한장 반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적으면서 나도 내 삶이 글로서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챙겨간 노트겸 일기장

 
 
 
 
 

오전에 출발

5일치 짐도 있고, 수도원이 산속에 있으니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자차를 가지고 갔다. 모이는 시간은 오후 2시. 월요일이니 차가 막힐까봐 새벽 일찍 출발할까도 싶었는데, 친구가 오전 10시에 출발하면 충분할 것 같다고 했다. 친구의 의견을 따라 10시~10시 30분 정도에 출발했다. 차 타고 가는 길에 하늘이 매우 맑았다. 정말 가을이 왔구나 싶을만큼 파랗고 높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또 이런 좋은 날에는 운전하며 탁틔인 풍경을 달리는 낙이 있다. 여행가는 기분! 구름마저 그림같구나! 아! 참고로 수도원에서는 휴대폰 사용을 금하기 때문에 시계를 챙겨가는 게 좋다.

 
 
 

 

꼬불한 산길을 지나 도착

시골동네를 지나 산길로 향해 가고 있는데, 좁고 울퉁불퉁해서 차가 매우 흔들렸다. 내 차는 승용차라 차체도 낮아서 돌에 바닥이 긁힐 것만 같았고, 타이어가 혹시 터지는 것은 아닌가 하며 조금 걱정이 됐다.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싶었는데 돌로 만든 십자가가 보였다. 바로 옆에는 주차장으로 이미 2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갔던 터라 짐은 나중에 뺄 생각으로 몸부터 내렸다. 
주차장 위로 올라가면 주택 한채가 보인다. 가까이 갔으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으나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여기가 아닌가 싶어서 다시 네비를 켜보니 좀더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나와 주택 옆길을 따라 좀더 올라가보니 또 다른 집이 보였다. 가서 보니, 그곳이 내가 묵을 숙소이자 예배당이자 식당이었다. 
먼저 도착하신 분들은 방을 이미 정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단체로 한 방을 주실 줄 알았는데 1인 1골방이다. 나는 늦게 도착한 편이라 어쩔 수 없이 남는 방을 사용했는데, 햇볕이 들지 않는 작은 방이었다. 햇볕 드는 방을 잡으려면 일찍 와야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쉬워했으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잠이 필요했던 내게는 어두운 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이 곳 너머에 보이는 파란 지붕이 예배당, 숙소, 식당이 있는 곳이다. 저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침묵을 위해

모이는 곳은 숙소가 아닌, 목사님이 지내시는 사택 중 별도의 모임방이다. 그곳에 모임으로서 4박 5일의 여정이 시작됐다. 먼저는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생활관련 공지사항을 전달해주신다. 그 중 침묵기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곳이라 휴대폰을 걷기도 하지만, 참여자들이 연령대가 있어서인지 비행기모드로 설정해두라고 하셨다. 과연 내 손에 있는 폰을 내가 안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묵상과 묵상방법에 대해 알려주시면서 렉시오디비나와 센터링기도를 가르쳐주셨다. 이미 교회에서 영성훈련으로 경험해본 적이 있던터라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목사님과의 면담이 1회씩 주어진다. 시간대는 목사님이 정해서 알려주신다. 
 
 
 



일용할 양식인 매끼 식사

식사는 아침,점심,저녁 모두 거주하고 계시는 사모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다. 주로 직접 기르신 채소와 야채들로 요리를 해주시고, 주위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밥도 자주 해주셨다. 한끼 한끼 정성으로 넉넉히 차려주시니 매끼마다 너무 감사하고 맛있어서 행복했다. 또 부모님께서 지방으로 내려가 사시니,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이런 푸짐한 집밥이 내겐 너무 귀한 식사였다. 식사시간에도 서로 침묵을 해야한다. 나는 창가를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언제 한번은 창문으로 고양이 한마리가 식당을 쳐다보면서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놀란 고양이의 표정이 웃겼다. 수도원에서 처음 먹은 식사는 저녁식사였다. 쌈채소와 고기를 싸먹는 식단이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밥'은 예전부터 나에겐 사랑의 의미로 다가오곤 했다. 누군가 정성스레 해준 밥에서 느끼는 감사. 그리고 그 양식으로 내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음에 감사. 밖에서 사먹는 음식에는 그런 것을 잘 느끼지 않는데, 집에서 차려준 집밥에서는 그런 감사와 은혜를 느낀다. 이번 수도원에서의 식사도 매끼마다 감사함으로 먹었다. 섬겨주신 사모님과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목사님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분과 거주하시는 목사님으로 두 분이 계신다.)
 




 

묵상기도와 면담

일정은 주로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새벽기도, 아침 먹고 기도, 점심 먹고 기도, 산책 후 기도,,,저녁 먹고 예배드린 후에 또 기도. 이 기도는 개인 혼자서 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나는 전날부터 잠을 잘 못 이루었던 터라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내 방이 아닌 곳에서 자려니까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밤 늦게 눈을 감아 새벽기도를 드려야할 시간까지 자버렸다. 그래도 아침밥은 먹겠다고, 아침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 밥 먹으러 갔었다. 
두번째 날부터 목사님과의 면담이 진행된다. 면담를
하기 전까지 나는 면담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긴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면담을 받고 나면 내게 필요한 기도와 또 어느 지점을 돌아봐야하는 지 등 구체적인 목사님의 피드백이 주어지니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어 나중에는 면담시간이 기대되었다. 나는 어린시절에 대해 돌아보는 게 포인트였다.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잘 되지 않아 목사님의 피드백을 통해 같은 구간을 세번이나 기도하곤 했다.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돌아보는 건 정말 내키지가 않다. 이미 기도했는데, 더 나아지는 게 있을까, 다른 뭔가 깨닫게 해주시는 게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러번 돌아봤을 때에 또다른 기억이 떠오르면서 기도할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구마 줄기처럼 내가 기도해야할 지점들이 나온다고 할까?! 그게 나는 너무 신기했고, 수도원 오기 전에 혼자 기도하면서 느꼈던 한계를 이곳에서 깨뜨릴 수 있었다.
 
 
 
 
 
 

산책

수도원은 수직선으로 이루어진 구조라서(무슨 말인지 와보면 알 것), 산책할 곳이 다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산책하면 길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자연 속에 파묻혀 좋은 공기 마시며, 푸르른 자연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 벌레는 좀 많아서 좀 거슬리긴 했다. 그리고 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곤 했는데 상주해 계시는 목사님께서 주위에 뱀이 많고 독사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맨발로 슬리퍼 신고 다닐 때에는 수풀로 많이 가지 않았고, 주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로만 이용했다. 실제로 마지막 집 가는날 주차장 부근에서 뱀을 봤다. 윽! 이 외 야생화와 다양한 나무들, 밤을 품고있는 밤나무 열매들을 보는 것에서 오는 쉼이 참 좋았다.
 

 

 
 
 
 
 

 

집가는 날, 권사님들과 티타임

수도원에서의 마지막 날.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정작 막날이 되니 벌써 끝났나 싶다. 수도원에 머무는 기간동안 비내린 날도 있었는데, 가는날은 수도원에 도착하던 날의 하늘처럼 가을을 다시 되찾은 하늘이었다. 마지막 점심식사 후 청소시간, 같이 이 시간을 함께 했던 권사님 두 분은 택시타고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서울 부근 쪽 역에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함께 차에 타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고마워서 자꾸 커피를 사주시겠다고 커피집을 찍으라고 하셨다. 나도 날씨가 좋아서 근처에서 커피 한잔하고 집가면 참 좋겠다~ 하고 아침에 생각했던 터라 몇번 거절하다가 이내 커피집으로 향했다. 포장을 생각했는데, 아예 카페에서 먹고 가게 됐다. 수도원에서는 침묵만 하느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는데, 어떨결에 카페에서 셋이 앉아 대화를 한다는 게 신선하고 재밌었다. 두 권사님은 중학생 때부터 친구사이라고 하셨다. 두분은 우리 엄마 또래이셨다. 하지만 대화할수록 친구처럼 편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특히 영적인 코드가 잘 맞다보니 대화를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긴 했는데, 해주시는 말씀들이 마음에 울림이 되기도 하고, 나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신 분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이니 자동 경청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침묵기도 프로그램을 통해 묵상기도하시면서 느끼신 것들을 나눠주신 게 참 인상적이었다. 예수님과 저렇게 대화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두 권사님들의 나눔은 곧 영성 선배의 말씀과도 같기에 이렇게 나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최종 후기

수도원을 다녀온 날에는 짐정리를 하고 바로 다음 일정이 있어서 지난 시간에 대해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주말을 지나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지난 수도원의 시간들을 되살펴 보는데, 내게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을 뽑자면 2가지다.
첫번째는 어린 시절에 대한 상처를 수도원에서 여러번 묵상기도를 통해 다루다 보니, 이제는 그 어린시절을 떠올리거나 찔러봐도 아프거나 슬프지가 않다. 그 시간과 아픔에 대해 하나님께서 나를 품어주시고 위로하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다. 
두번째는 성경말씀을 토대로 한 묵상기도를 앞으로 내 영성생활에 더 친근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 성경 통독을 할 때에 렉시오디비나를 통해 기도 드리곤 한다. 더불어 렉시오디비나나 묵상기도가 혼자 지속할 때, 잘못된 방향으로도 빠질 수 있기에 나는 종종 친구와 함께 묵상을 하고 나눔을 한다. 같이 했을 때, 묵상을 통한 나눔이 서로에게 감동과 울림이 되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 점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관계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을 앞두고 수도원을 다녀왔던 건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관계에 자꾸 걸림이 되는 내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치유 또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으로 나아가게 되니 해결 해야할 관계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었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회복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면 반드시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혼자서 그런 과거의 어려움을 다루기가 어렵다면 은성수도원의 침묵기도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정말 내 삶에 중요하고 좋은 타이밍에 다녀와서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은성수도원의 침묵기도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시는 이원형 목사님과 상주해 계시며 수도원을 관리해주시고 또 식사를 매끼 준비해주신 목사님,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가장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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